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검찰과 언론의 책임론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보가 들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부각됐던 책임론은 ‘애도’가 먼저라는 분위기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다시 노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언론플레이 그리고 그런 검찰의 수사내용을 일방적으로 받아쓰기한 언론들에 대한 문제가 지적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27일자 한국일보에는 “억대 시계 본 적도 없다고 억울해 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노 전 대통령의 동창생의 말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소환조사를 전후로 “문제의 시계는 박 회장이 자신의 비서실장을 형님(건평씨) 집으로 보내 회갑기념으로 대신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나는 한 번 보지도 못했다”며 억울해 했다는 것이다.


5월 27일자 한국일보 기사

그리고 그는 건평씨의 부인이 시계를 받은 뒤 청와대의 권양숙씨에게 전화를 걸어 “회갑기념 선물인데 그냥 받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권씨는 “되돌려주든지 형님이 가지시라”며 거절했다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의 하소연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아온 동기들은 “자존심이 강했던 노 전 대통령은 권 여사가 박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은 일부 시인했지만 시계는 정말 받지도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도덕성과 관련해 심적 부담을 크게 느꼈고 자살을 결심하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라고 덧붙였다고도 한다.

그동안 스위스 산 피아제 명품시계는 검찰의 ‘노 전 대통령 망신주기’의 대표적 사례로 꼽혀왔다. 그렇다면 피아제 명품 시계와 관련해 검찰과 언론보도는 어땠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을 텐데.

노무현 전 대통령과 명품시계 보도 이렇게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과 명품시계 이야기가 나온 것은 3월 말. ‘큰 손’이라고 불리던 박 회장은 미술품 투자에서 수완을 발휘한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고, 미술품만이 아니라 명품 시계 구입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며 “일각에서는 박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고가의 시계를 생일선물로 주는 등 ‘시계로비’를 벌인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고 <연합뉴스>가 최초 보도했다. 로비를 통해 박 회장이 어떤 것을 얻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때문일까? 의혹이 제기됐지만 당시에 이 문제는 그대로 묻혔다. 그리고 다시 ‘명품시계’가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4월22일로, 노 전 대통령 측에 서면질의를 발송하던 날 검찰 관계자를 통해 나왔다. 20여일이 넘는 시간이 지난 후에 재등장한 것이다. 이때 검찰은 언론을 통해 “2006년 9월 노 전 대통령 회갑을 맞아 명품 시계 2개를 대통령 부부에게 선물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이때 함께 등장한 것은 그 손목시계는 ‘스위스 P사 명품시계’이고, ‘보석이 박혀 있어 개당 1억원’짜리 라는 것이었다.

문재인 변호사는 이를 두고 “사건 본질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로 망신 주겠다는 것으로 비열한 짓”이라며 언론에 흘린 검찰을 비난했고, 검찰 역시 “검찰 내부에 형편없는 빨대가 있다는데 실망했고, 색출해내도록 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빨대 색출은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품시계 수수 언론보도는 이랬다

<조선일보>는 노 전 대통령이 받은 명품시계에 큰 관심을 보였다. 신문은 “국내 매장에 5~6개뿐… 문재인 ‘망신주자는 거냐’”이란 제목으로 그동안 ‘P’라고만 보도됐었던 시계가 ‘피아제’였다는 것을 명시했고 사진까지 공개했다. 그렇다면 그 사진은 노 전 대통령 측에서 받은 시계? 아니다. 단지 같은 제품인 피아제 시계일 뿐이다. 다분히 악의적인 노출이라고 볼 수 있다. <아시아투데이> 역시 “135년 역사 스위스 피아제사 제품 … 30억원 넘기도”라며 합류했다.

 
4월24일자 조선일보 기사

지난 4월30일 노 전 대통령은 검찰수사에서 박 회장의 시계 선물에 대해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부분은 언론들은 “‘또’ 몰랐냐”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5월13일 SBS <8시뉴스>에서는 “시계, 논두렁에 버렸다”는 제목으로 “노 전 대통령은 권 여사가 자기 몰래 시계를 받아 보관하다가 지난해, 박 전 회장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시계 두 개를 모두 봉하마을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비싼 시계를 논두렁에 버린 이유에 대해서는 집에 가서 물어보겠다며 노 전 대통령이 답변을 피했다고 검찰은 밝혔다”고 전했다.

 
5월13일자 SBS보도

YTN은 같은 날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회갑선물로 준 1억원짜리 명품시계 2개를 권양숙 여사가 버렸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한 보도와 차이가 난다. ‘논두렁’에 버렸다는 것은 어디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당시 언론들은 또다시 ‘증거인멸 시도’라고 규정해버렸다.

‘논두렁’에 버렸다는 이 보도로 인터넷상에서는 “봉하마을에 명품시계 찾으러 갑시다”라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이러한 네티즌들의 움직임 또한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시절 TV광고에 출연했던 욕쟁이 할머니도 “1억짜리 시계를 버려? 서민 분노할 일”이라고 했다고 하고, 그 돈이면 라면이 몇 봉인지 등 원색적인 비난도 시작됐다.

어제 26일 노 전 대통령 동기의 인터뷰는 또다시 명품시계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이에 문재인 변호사는 “권 여사는 그저 고급시계 정도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검찰 수사과정에서 이 시계가 1억원짜리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파기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보도에 억울해했다고 밝혔다.

검찰수사의 의문점 두 가지 - 언론에 흘린 시점과 뇌물혐의 적용

검찰이 명품시계의 이야기를 언론에 흘린 4월22일은 이미 검찰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힌 상황이었고, 당시 검찰에서 물증이 아닌 ‘정황’적인 증거로만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던 때였다. 600만 달러의 최종 목적지가 노 전 대통령일 거라고 확신했지만 구체적인 증거를 잡지 못해 검찰이 고심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기도 했다. 이런 시점에서 나온 ‘명품시계’. 그 효과는 대단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상한 일이 발견된다.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노 전 대통령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적용해 사법처리하겠다던 검찰의 발표였다. 당시 검찰은 피아제 시계는 통상적인 선물로 보기엔 지나치게 고가여서 뇌물로 봐야 한다는 것이 논리였다. 대가성 여부가 중요하다던 검찰은 결국 ‘대가성’에 대해서는 또다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박연차 회장은 검찰 진술에서 노 전 대통령 회갑 ‘선물’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 역시 ‘받았다’라는 사실을 부인하진 않았다. 결국 ‘명품시계’와 ‘포괄적 뇌물수수’의 연관성은 그 사이에 ‘대가성’으로 견줘야 했다. 그러나 검찰은 어떤 대가가 있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 없이 단지 고가이기 때문에 선물로 볼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법해석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의 고의든 아니든 이미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 명품시계 수수 내용은 직접적인 ‘혐의’ 사실을 떠나 국민들의 관심사로 떠올랐고, ‘1억’, ‘피아제’라는 것만으로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주장해왔던 도덕성과 청렴함을 깎아내리기에 충분했다.

검찰은 가장 적절한 시기를 골라 명품시계 얘기를 흘렸고, 언론은 이를 확대재생산해 검찰에 힘을 실어주는 부창부수,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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