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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유대 민족의 위대한 족장으로 간주된다. 그는 또한 기독교와 이슬람의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실존에 대한 증거로서 결정적인 것은, 자주 주장되는 것처럼 세 종교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는 생각이다. 성서 연대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기원전 2100년경에 가나안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는 것처럼, 그가 우르의 칼데아로부터 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칼데아는 기원전 1000년 이후에나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자료 이전에 칼데아가 존재했다는 기록은 없다. 창세기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팔레스타인 왕인 아브멜렉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팔레스타인은 기원전 1200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비록 아브라함과 다른 족장의 이야기에 낙타가 자주 등장하기는 하지만, 낙타의 사육은 기원전 1000년이 지나서야 가능해진 것이다. 또한 타나크에서 '고무, 향유, 몰약'을 운송하는 수단으로 낙타 대상이 자주 언급되지만, 이것 역시 기원전 8세기에 이르러서야 널리 보급된 것이다.

모세
모세가 실재했다는 증거는 없다. 비록 그가 이집트 왕족의 영향력 있는 인물로 묘사되기는 하지만, 이집트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없다. 또한 유대인들이 이집트에 포로로 붙잡혀 있었다거나, 모세의 지도 아래 이집트로부터 탈출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어떠한 증거도 없다.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역사를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였는데, 어디에도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혔었다는 언급은 없다. 이집트의 수십만이나 되는 기념비의 명문, 무덤의 명문, 그리고 파피루스는, 출애굽에 등장하는 이야기처럼, '60만이나 되는 남자가, 거기다 여성과 어린 아이'를 데리고 이집트 군대를 뚫고 탈출한 사실에 대해 완전히 침묵하고 있다.(Exodus 12.37. Finkelstein, I., Silberman, N.A., The Bible Unearthed: Archaeology's New Vision and the Origin of Its Sacred Texts(The Free Press 2001), 51-60을 볼 것.)

많은 기적을 동반한 모세 이야기는 신화의 모든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모세 탄생 이야기는 사르곤 대왕, 아카드 왕의 탄생 신화를 개작한 것이고, 이 이야기는 기원전 6세기경부터 변형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세처럼, 어린 사르곤은 '풀로 만든 바구니에 넣어져' '강물에 던져졌고' 얼마 후에 세력이 있는 여성에 의해 구출된다. 유사한 그리스 이야기에서는 어린 디오니소스가 상자에 넣어져 나일 강에 버려진다고 한다. 아마 이러한 이야기는 모두 다, 상자에 넣어져 나일강에 버려졌다는 오시리스의 이야기로부터 기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호수아
타나크에 따르면, 여호수아는 가나안의 '약속의 땅'을 파괴적 침략을 통해 빼앗은 위대한 장군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가 실재했다는 증거는 없다. 실제로 이집트로부터 탈출한 유대인들이 가나안을 침공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출애굽이 일어났나고 여겨지는 가나안 지역은 기원전 14세기부터 12세기까지는 이집트에 속해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이집트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이집트의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것에 불과한 것이다. 유대인이 약속의 땅을 침략했다는 것을 말하는 「여호수아서」에는, 그 당시 가나안 지역에 살았던 수많은 이집트인에 대한 언급이 없다.('...그 이야기는 13세기에 일어난 일을 묘사한것이 아니라는 유력한 증거들 중 하나' Sturgis, M. It Ain't Necessarily So: Investigating the Truth of the Biblical Past (Headline 2001), 54.)

1999년 텔아비브 대학 고고학연구소의 헤르조그Ze'ev Herzog 교수는 이스라엘 신문 하레츠Ha'aretz에 '여리고의 성벽을 해체하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표했다.

(http://www.real-debt-elimination.com/real_freedom/Propaganda/deconstructing_the_walls_of_jericho.htm 참조) 여기서 그는 출애굽, 여호수아의 침략, 그리고 유명한 여리고의 성벽은 모두 역사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선언했다. 그는 이렇게 한탄한다.

이 사실은 여러 해 동안 알려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은 고집 센 민족이라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Sturgis, M. It Ain't Necessarily So: Investigating the Truth of the Biblical Past (Headline 2001), 7.)

비록 그의 관점이 학계에 있어서는 이미 광범위하게 공유된 것이었지만, 헤르조그Herzog의 기사에 대한 반응은 열광적이었고, 이스라엘인들의 반응은 대부분 격렬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만약 그 땅이 단순히 신화에 근거한 것으로 판명난다면, 현대 이스라엘의 영토 소유권은 진정으로 타협을 거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바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윗
다윗은 어떠한가? 그는 실재했었는가? 1993년에 '다윗 왕가의 왕'이라고 새겨진 명문이 탤단에서 발견되었다. 그 이전에는 다윗과 관계된 기록이 타나크 외에서 발견된 적이 없었다. 그 발견은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고, 뉴욕타임스 전면과 타임 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했다.

보라, 여기에 성서의 지도적 인물 중의 한 사람에 대한 독자적인 첫 확증이 있으며, 이스라엘과 유대의 통합적인 군주이며, 시편의 유명한 가수이자, 골리앗을 죽인 자이며, 그리고 예수의 선조인 다윗 왕이, 역사적으로 실재했다는 증거가 여기 있다.

그러나 10년간의 정밀한 탐구를 통해서, 그 명문은 다윗이 역사적으로 실재했다는 증거가 전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먼저, '다윗 왕가의 왕'이라는 해석은, 그것이 거대한 왕궁에 세워진 매우 훌륭한 명문일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사실은 'bytdwd'라고 6자가 새겨진 하나의 돌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왕'이라고 주장된 첫 단어는 단지 한 글자로부터 유추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하나의 글자는 실제로 많은 다른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기록된 히브리 언어에는 모음이 없으므로, 모음을 삽입해서 읽어야 한다. 그래서 한 명문 해석에도 다양한 의미가 도출될 수 있다. '다윗'으로 변역된 글자는 동시에 '사랑받는', '아저씨', 혹은 '주전자'로도 번역될 수 있다!(Sturgis, M. It Ain't Necessarily So: Investigating the Truth of the Biblical Past (Headline 2001), 129.) 이것은 베쓰도드Beth Dod라고 불리는 궁전의 이름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최근에 발견된 또 다른 명문은 '다윗의 집'을 가리킨다고 선언되었다. 그러나 이 명문의 히브리 단어는 탤단의 단어와 다르다.(Sturgis, M. It Ain't Necessarily So: Investigating the Truth of the Biblical Past (Headline 2001), 132-133.) 어떻게 된 일인가?

문제는 당장 성서의 어떤 내용을 확증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발견됐을 때, 추측에 근거하는 많은 선험적 믿음들이 그 증거가 이론에 일치한다는 것을 보증한다는 점이다. 현대의 한 학자는 탤단의 명문이 다윗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려는 사고방식은, 바로 그러기를 바라는 생각, 즉 증거로부터 더 나아가기보다는 성서로 돌아가려는 학자들의 권위주의적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간주한다.(Sturgis, M. It Ain't Necessarily So: Investigating the Truth of the Biblical Past (Headline 2001), 128-129.) 또 다른 학자는, '공표된 단편들은 하나의 명문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명문이라는 것을 확신한다.'(Thompson, T.L., The Bible in History: How Writers Create a Past(Pimlico 1999), 205.) 또 다른 학자는 명문이 위조되었다는 표시를 찾아냈고, 현재 전체 대상을 이스라엘의 고대 유물국에서 조사 중이다. 고대 유물 시장은 그러한 모조품에 의해서 혼란이 일어나는데, 그 이유는 성서가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무모한 욕망을 가진, 부유하고 유력한 단체가 있기 때문이다. 성서를 실증하는 것은 어떠한 발견이든 간에 세계적인 뉴스가 되는 것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후에 이 발견이 가짜임이 밝혀져도, 이것은 보도 가치가 적으므로 보도되지 않는다.

설령 다윗이 실재했었다 하더라도, 그는 도저히 타나크에 등장하는 강력한 왕일 수가 없다. 그 당시에 그가 광대하고, 정교한 문명을 가진 나라를 지배했다고 말하지만, 고고학상에 나타난 실제 세계는 2,000명을 넘지 않는 농부들이 사는 작은 마을 12개 정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나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Thompson, T.L., The Bible in History: How Writers Create a Past(Pimlico 1999), 206. 그리고 Sturgis, M. It Ain't Necessarily So: Investigating the Truth of the Biblical Past (Headline 2001), 133을 볼 것) 만일 다윗이 실재했었다면, 그는 작은 지역을 관장하는 족장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의 주석가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의 주요한 불일치는, 디윗은 사방 몇 마일에 지나지 않는 작은 지역의 족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음을 지지하는, 수는 적지만 목소리가 큰 일단의 사람들, 즉 성서에 대해 최소한의 기대 밖에 안하는 사람들의 사이에 있다.(Daniel Lazare, "False Testament: Archaeology refutes the Bible's Claim to History," Haper's March 2002, vol.304, no.1822:40)

솔로몬
그러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어떠한가? 그는 3백 명의 후궁들과 7백 명의 아내들이 있었다. 여기에는 이집트인, 모아브인, 암모나이트인, 에돔인, 요르단인, 그리고 히타이트 공주들이 포함되어 있다. 성서에 따르면, 그는 광대한 왕국을 통치했으며,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와 동등한 지위에서 교역하는 선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매우 부유해서 그의 군사들은 황금방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뛰어난 지혜로 유명해서, 이집트 시바 여왕의 초대를 받을 정도였다. 그는 언약의 궤를 넣어둘 궁전을 짓는 데 13년을 보냈고, 황금과 값비싼 보석들로 장식하였다. 그러므로 반드시 누군가, 어딘가에서 이라한 일을 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아직 솔로몬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는 이집트 파라오의 딸과 결혼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이집트인의 기록에서도 찾을 수 있어야 하는 왕조의 이 동맹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의 이름은 중동의 어떠한 텍스트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것 어느 것도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 당시에 예루살렘은 광대한 제국의 도시가 아니었다. 실지로는 작은 마을일 뿐이었다.

기원전 1000년경에 고대 유대의 고지대에는 공공 건축물, 궁전들, 상점 또는 사원도 없었다. 기록 보존을 위한 정교한 종류의 기호, 즉 문서, 인장, 그리고 인장 인쇄물은 거의 완전히 부재한다. 사치품들, 수입한 도기류나 보석류도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전체 지역의 인구는 4만 5천명이 되지 않았다. 당시에 팔레스타인의 고지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타나크의 작가들이 기록한 사람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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