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2: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신명기 14:21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스스로 죽은 모든 것은 먹지 말 것이나 그것을 성중에 거류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파는 것은 가하니라
 
스스로 죽은 짐승(아마도 병으로 죽거나 늙어 죽었겠지)을 이방인에게 먹일까요? 말까요?
 
마태복음 10장
22. 내 이름 때문에 너희가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23. 이 마을에서 너희를 핍박하면, 다른 마을로 피하여라.
 
핍박 받으면... 끝까지 버텨서 구원 받을까요, 다른 마을로 피할까요?
 
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고린도전서 7:19
할례를 받았거나 안 받았거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내 아들 포경을 시킬까요, 말까요?
 
잠언 25:17
이웃이라고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지 마라.
지겨워서 너를 미워하리라.
 
마태복음 10:27
내가 어두운 데서 말한 것을 너희는 빛 가운데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전도를 해야 되나요, 말아야 되나요?
 
전도서 8:15
나는 생을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에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일하면서, 하나님께 허락받은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언제나 기쁨이 사람과 함께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 21:34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 날이 갑자기 닥쳐올지도 모른다. 조심하여라.
 
먹고 마실까요, 말까요?
 
디모데전서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마태복음 19: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가족을 버릴까요, 말까요?
 
마태복음 18:10
“이 어린아이 한 명이라도 업신여기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뵙고 있다.

잠언 23: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아이를 때릴까요 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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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페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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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3월 7일 「 U.S.A Today」지가, 일반인들이 하버드 대학은 몰라도 하비 콕스는 안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고 평한 하비 콕스(하버드 신학대학 신학 교수) 세계적인 주류 중의 주류 신학자인 그가 『FIRE FROM HEAVEN』(한국에서는 영성·음악·여성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한국의 기독교와 성령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다음-

남한은 적어도 통계적인 의미에서는 매우 빨리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제3세계 국가의 경우처럼, 예를 들어 화란 개혁교회(Dutch Reformed) 같은 전통적인 서구 기독교 교단들의 이름은 한국의 기독교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에서 타종교로부터 가장 많은 기독교 개종자를 만들어 낸 것은 가톨릭이나 장로교라기보다는 성령운동 교회였다. 그러므로 한국에서의 기록적인 기독교 성장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한국의 성령운동과 관련해 (중략…)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실례에서 찾아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교인수가 80만이나 되는 세계 최대의 교회이다. 1958년 5명의 교인으로 출발한 그 교회의 기적과도 같은 성장 기록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하나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중략…) 세계의 성령운동 교인 중 어느 누구도 여의도 순복음교회 성장의 주된 이유가 성령 치유였다는 사실에 대해 곤혹스러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령 치유가 세계 모든 지역에서 성령운동 메시지의 본질적인 요소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 성령운동교인들이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은 한국 성령운동이 그 예배 속에 한국 무교와 귀신 들림(demon possesion)을 흡수함으로써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데에 있다. 사실 이러한 흡인 능력은 성령운동에 있어 특이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성령운동의 확산에 결정적 영향을 했다. 그러나 서구 성령운동 교인들이 한국의 경우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은 도대체 누가 누구를 흡수하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을 만큼 한국 성령운동 교회가 무속 종교적 측면을 흡수한 정도가 매우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한국 성령운동의 성장은 아시아 문화권에서 기독교가 성공적으로 토착화된 한 실례인가? 아니면 단지 기독교로 가장한 지속적이며 두드러진 한국 무속 종교의 한 형태인가? 이것에 대한 논의가 현재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그 논의의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1963년 교회 개척 5년 만에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교인수는 2,000명에 이르렀다. 각 교인들의 헌식적인 말씀의 전파자이자 전도의 역군으로서 교회를 계속 확장시켜 나갔다. 1971년 1만 5,000명, 1981년에는 20만 명으로 교인수가 불어났다. 현재의 교인수는 80만명이 넘는데 그들 대다수는 주일 대예배 참석 외에 소규모 구역 단위로 기도회와 성경 공부 모임을 갖고 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2,000년에는 교인수가 1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가능할 것이다. 그 교회 성장의 역사는 유례가 없으나 그렇다고 아주 독특한 것은 아니다. 그 교회가 성장하던 시기 성령운동의 물결은 남한 전역을 휩쓸고 있었다. 신뢰할 만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만 5,000개가 넘는 교회 건물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가리켜 교회가 커피숍이나 약국보다도 많다고 비꼬아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 교회들 전부가 성령운동 교회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령운동 교회와 그와 유사한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이 그 밖의 교회 모두를 합한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성령운동 교회 예배를 여러 번 보았던 사람일지라도(하비 콕스의 입장) 여의도 순복음 교회 안을 잠시 들여다보게 되면 그 순간 충격을 받을 것이다. 소위 ‘할렐루야 로빅(Hallelujah-robics)’이라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그것은 전자 오르간, 드럼, 아코디언 등 여러 악기를 사용해 귀를 찢을 듯한 고성으로 연주하는 찬송에 맞추어 추는 일종의 춤이다. 그 춤은 교회 청년부 소속의 열광적인 댄싱 팀에 의해 인도된다. 한 곡의 연주가 끝나고 잠시 음악이 멈추면 교인들은 우리가 오하이오 주 미식축구 경기장에서나 들을 수 있는 커다란 함성을 지른다. 그들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큰 소리로 “아버지 하나님”이라 외치고는 많은 사람들이 양손을 든 채 알 수 없는 말과 소리로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대중음악 곡조로 편곡된 찬송을 부르기 시작한다. 그들은 찬양을 하면서 몸을 앞뒤로 움직이기도 하고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기도 한다. 때때로 악단은 이스라엘 곡 ‘하바 나길라(Havah Nagila)’를 부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찬양의 템포를 거듭 빠른 속도로 증가시키고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갈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부르다 지쳐 멈춘 후 행복해 한다.

외침과 찬양이 진행되는 동안, 목사들은 교인들 사이 통로로 걸어 들어오면서 가끔씩 교인들의 머리와 등을 손으로 가볍게 친다. … 찬양과 춤이 모두 끝나자 목사 한 사람이 강단으로 나와 기원이라기보다는 주문을 외우는 것 같은 형식으로 기도를 인도한다. 그가 “할렐루야”나 “오, 주님” 또는 “성령 충만”과 같은 말을 100번이 넘을 정도로 여러 차례 반복해서 외우면, 곧 이어 나머지 교인들도 따라 함께 외우기 시작한다. 이러한 주문조의 기도 도중 많은 수의 여성 교인들과 소수의 남성 교인들이 양손으로 가슴을 치며 울거나 외쳐댄다. 그런 한편 목사는 교인들에게 어떤 질병도 꼭 나을 수 있다고 거듭 확신시켜 준다.

목사가 다시 강단에서 내려올 때 교인들은 안수를 받거나 등 또는 어깨와 목사의 손이라도 닿게 하려고 그의 주변으로 몰려든다. 종종 그는 질병을 일으키는 마귀에게 그 사람의 몸에서 나오라는 단호한 명령을 말하기도 한다. 예배가 끝났을 때 자신의 병이 치유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소리쳐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교회를 떠난다. 아직 병 고침을 받지 못하고 사모하는 마음에 깊이 젖어 있는 사람들은 교회 문이 닫히는 밤중까지 남아 몸을 흔들며 기도를 한다. 그러나 병고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그것에 결코 실망하지 않으며 다음날 다시 교회를 찾아온다.

비교종교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예배 형식이 일반적으로 무속 종교로 알려진 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을 한국의 성령운동 교회 목사들에게 말하면, 그들은 그것을 완강히 부인한다. 그들은 고린도후서 2장에서 사도 바울이 “세째 하늘에 이끌려가”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을 들은 무아적 체험을 내세우면서, 사도 바울도 무아적 황홀감의 도취상태에서 환상을 보았는데 왜 자신들은 그럴 수 없느냐고 반문한다. 그들은 또한 신약 성경 속에는 귀신 들림과 귀신 쫒아내기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예로 예수께서 거라사 지역의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이야기와 막달라 마리아의 일곱 귀신을 쫒아내신 이야기를 지적한다.

이러한 성경 근거를 논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의 성령운동 교회 목사들의 설명이 계속될수록 서구 성령운동 교인들은 무언가 논점이 빗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들은 서구의 성령운동 교인들에게 한국 성령운동 교회가 보편적인 세계 성령운동 예배의 틀 안에 있음을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중략…)

여의도 순복음교회 또는 다른 몇몇 한국 성령운동 교회들 중 한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외견상 흡수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 한국 무속 종교의 요소들을 삼키고 변형시키는 한국 성령운동 교회의 특징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무속적 황홀감의 도취, 귀신 들림, 귀신 쫒아내기 등 모든 것이 한국 성령운동 교회의 ‘하나님’ 예배 속에서 발견된다. 하나님은 한국인들이 기독교의 신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고, 또 기독교 전래 이전부터 한국 무속 종교가 섬기는 최고 신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 매우 미묘한 문제가 대두된다. 즉 한국 성령운도 교회의 예배에서 어떤 신이 어떤 신을 흡수하였는지가 분명치 않다. 한국 무속 종교의 최고 신 하나님이 기독교의 하나님을 대치하였는가? 아니면 한국 성령운동 교인들이 믿기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되 단지 언어적 표현으로서 하나님이란 이름만 사용하는 것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많은 한국 사람들이 구습이고 미신이라 하여 멀리한 무속적 귀신 쫒아내기가 성령운동을 통해 가장 현대적인 국가 미국에서 온 가장 현대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의 틀 안에서 자유롭게 또는 떳떳하게 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이 주어진 후에도 세계 교회 협의회 총회의 많은 참석자들에게 떠올랐던 한가지 질문은 아직도 남아 있다. 무속 종교는 기독교와 양립 가능한가? ‘무교적(巫敎的) 기독교 성령 운동’이란 것이 가능한가? (중략…) 대부분의 무당들은 장구 북소리 같은 음악과 주문을 외는 것 등을 통해 그들 스스로를 밖으로 유도해 내어 특수한 무아적 도취 상태에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한다. 무당들은 인간 고통의 원인과 그 실체에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는 영적인 능력을 불러내기 위하여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교리적 신조하에 있건 또는 모든 교리적 신조를 거부하건, 아마도 인간은 모두가 근본적으로 사면적인 능력을 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기독교 예배 의식 안에 무교적 관습이 많이 유입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한국 성령운동 교인의 대다수는 이 점을 부인한다. 그들은 그들의 예배와 무교 사이에 외면적 유사성이 있다 할지라도 그 사이에는 보다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 그러나 미국의 성령운동 교인들은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령운동에 기독교 이전의 종교 의례, 또는 비기독교적인 종교 의례를 수용하는 것을 매우 주저한다. 따라서 그들은 한국 성령운동의 무교적 요소를 발견하고는 한국 성령운동 교회가 무교적 측면을 포함하고 있는데도 과연 기독교적일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점은 앞으로 한국 성령운동 교인들이 그들 스스로를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출처. Harvey Cox, 유지황(역), FIRE FROM HEAVEN, pp.312-320.

하비 콕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 1년간 독일 베를린에서 거주하면서 동독교회와 하버드대학교 간의 연락을 받는 일을 하였다. 귀국후에는 흑인 인권 운동에 참여했으며, 보스턴 흑인 거주지역에 살면서 흑인 해방과 민권 운동을 위한 사회 운동을 하였다. 저서로는 <예수, 하버드에 오다>, <세속도시>가 있는데 모두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wiki/%ED%95%98%EB%B9%84_%EC%BD%95%EC%8A%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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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뿌려대는 홍보물을 보면, 근거 없거는 거짓말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 다윈이 죽을때 진화론을 부정하고 죽었다느니, 석가모니가 예수가 오면.. 어쩌구 했다느니 하는 특정 인물에 관련된 얘기는 거의 99.99%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한국 기독교가 모두 그런 거짓말들을 하고 다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순복음교회는 그런 말들을 지어내는 사기꾼 집단으로 봐도 무방할 듯 합니다.

몇십년을 이어오던 아인슈타인 떡밥 관련한 얘기를 잠시 해 보자면, 아래와 같은 얘기들을 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저도 이 말을 송파구 모 교회 장로님께 들었고, 그 장로님은 현재에도 이 이야기를 철썩같은 사실로 믿고 있습니다.

"과학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더 알게 됐다"(논문중)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에 지나지않으며 과학이 없는 종교는 눈이 먼 것과 다름없다(주기 1년전 친구에게 보낸 서신 중)"

아인슈타인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논문에도 쓰고 친구에게 편지도 보냈다는 것이지요.

자, 추적 들어갑니다.
첫 번째로 발견한 것은 국민일보의 기사입니다.

http://news.kukinews.com/opinion/view.asp?page=1&gCode=opi&arcid=0003386389&code=1111

[사설] 악의적이고 무식한 反기독교 운동
[2010.02.08 17:58]
...
아인슈타인의 종교관은 매우 복잡하다. 정식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철저한 종교 부정론자도 아니었다. 주위 사람들에 따르면 그는 유신론과 무신론을 오가며 고뇌한 인물이다. 이번 버스 광고에 사용된 대로 신을 부정하는 듯한 말도 했지만 종교를 긍정하는 용어를 사용한 적도 많았다. 논문에 나타난 “과학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더 알게 됐다”는 표현이나 죽기 1년 전 친구에게 보낸 서신에서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에 지나지 않으며 과학이 없는 종교는 눈이 먼 것과 다름없다”고 한 말이 대표적이다.
...

아시다시피 국민일보는 조용기 목사의 소유(!) 입니다. 최근에 국민일보 회장직 관련해서 신문에도 기사가 나는 등 말이 많습니다. 이 사설에서는 기독교인들의 특기 답게 구체적인 인용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박사학위 하면서 저도 논문 많이 써 봤는데, 논문에서 신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쓰는 경우는 없습니다. 신학 논문에서도 그렇게 노골적인 말을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아무리 아인슈타인이라도 그런말을 논문에 썼으면 논문지에 오르지 못했을 겁니다.

친구 편지라는 부분은 1941년에 심포지움에서 발표했던 내용입니다(Science, Philosophy and Religion, A Symposium, 1941). 논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sacred-texts.com/aor/einstein/einsci.htm#TWO

This source of feeling, however, springs from the sphere of religion. To this there also belongs the faith in the possibility that the regulations valid for the world of existence are rational, that is, comprehensible to reason. I cannot conceive of a genuine scientist without that profound faith. The situation may be expressed by an image: science without religion is lame, religion without science is blind.

그러나, 이 느낌의 원천은 종교적 영향에서 나온다.  여기에, 존재하는 세계를 설명하는 법칙은 이성적이라는 가능성 역시 이러한 믿음에 속한다.  나는 그러한 깊은 믿음이 없는 진정한 과학자는 상상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은 이렇게 표현된다. : 종교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이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종교는 기독교도 아닐 뿐더러, 과학자들의 철학을 종교적 입장으로 해석한 것이라는 것을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을 가지고 목사는 거짓말하고, 그 목사가 주인인 신문사는 사설이라고 떠들어대고, 신도들은 여기저기 퍼 나르고... 거짓말의 펌질로 비롯되는 자가발전을 기독교는 역사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에서는 아래와 같은 기사를 내 보냈는데 이는 아무도 모르더군요.

(서울=연합뉴스) 이유진 기자 = "종교없는 과학은 절름발이고 과학없는 종교는 장님"이라고 말했던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반대되는 입장을 밝힌 편지를 남겨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넷판은 13일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의 자필 편지 한 통이 런던에서 열리는 경매에 출품된다고 전했다. 그는 이 편지에서 종교적인 믿음을 "유치한 미신"으로 치부했다.

아인슈타인은 지난 1954년 1월 3일 철학자 에릭 굿카인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내게 신(god)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표현 또는 산물에 불과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 성경에 대해서도 "명예롭지만 상당히 유치하고 원시적인 전설들의 집대성"이라며 "아무리 치밀한 해석을 덧붙이더라도 이 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대인 출신으로 이스라엘의 2대 대통령직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던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주장 역시 믿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유대인의 종교는 다른 모든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미신을 구체화한 것"이라며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유대 민족이라고 해서 다른 인간 집단보다 우월한 점은 없었다"고 말했다.

오는 15일 블룸즈버리 경매에 등장하는 이 편지는 8천파운드(약 1천600만원)에 판매될 전망이다.

AFP에서 원본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Belief in God 'childish,' Jews not chosen people: Einstein letter
http://afp.google.com/article/ALeqM5hh-Ij8qaiUlcVItOKC94wrhA2R1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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